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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건축: 이타미 준과 유이화의 바람이 남긴 호흡' 포스터.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제공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페즈(FEZH)에서 오는 12월 6일부터 '바람의 건축 : 이타미 준과 유이화의 바람이 남긴 호흡'전이 개최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40년 이상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1935∼2011)과 그의 딸 유이화(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이사장) 건축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에는 총 29점의 건축 작품을 비롯해 회화와 가구 등 두 사람의 다양한 작품이 함께 선보인다.

'바람의 언어' 듣는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

이타미 준은 생전에 '바람의 언어를 듣는 건축'이라는 독특한 철학으로 건축 세계를 펼쳤다. 그는 건축물이 자연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바람과 빛, 물과 흙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건축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제주도에 남긴 '방주교회', '포도호텔', '수·풍·석 뮤지엄' 등은 이러한 철학이 구현된 대표작들이다. 특히 그는 콘크리트, 목재, 돌 등 자연 소재를 활용해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으며,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공간 안에 담아냈다.

그의 건축은 단순히 기능적 공간을 넘어 사람들에게 사색과 치유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유이화의 건축

유이화는 아버지의 건축 철학을 기반으로 '그 땅에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축 세계를 이어왔다.

그녀는 아버지가 강조한 자연과의 대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건축에 담는 데 주력해왔다.

유이화의 작품은 지역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 관계가 축적되는 그릇이라고 믿는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페즈 역시 유이화가 설계한 공간으로, 복잡한 도심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온기와 호흡을 통해 모두의 회복을 향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시

이번 전시는 건축 모형, 드로잉, 스케치, 영상 등으로 구성된 네 개의 테마로 나뉘어 있으며, 2020년대 유이화의 최근 작품부터 1970년대 이타미 준의 데뷔작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관람객들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두 건축가의 철학적 흐름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유이화가 아버지의 철학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는지, 그리고 두 사람의 건축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관계자는 "두 건축가가 건축으로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통해 건축이 관계 맺은 땅과 우리 삶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공간과 자연, 삶에 대해 사유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