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기와지붕이 붉은 단풍을 이고 선 채, 투명한 물에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가을이 심장을 태워 절정에 이르는 순간, 11월 11일의 내장산.
산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호남의 금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장산은 붉은 영혼을 쏟아내며 온 산을 거대한 감동의 서사시로 채우고 있었다.
늦가을의 정령이 마지막 눈물을 흩뿌린 듯, 단풍은 피보다 진한 색으로 강렬하게 타올라 내딛은 발걸음마다 모든 곳을 신비로운 화폭으로 만들었다.
케이블카 탑승은 내장산의 깊은 속살을 감상하는 유영의 시간이었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색채의 교향곡
케이블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내장산의 깊은 속살을 허락받은 듯, 하늘 위에 걸린 '색채의 교향곡'을 감상하는 유영의 시간이다.
창밖의 풍경은 단풍바다다. 수천, 수만 개의 단풍잎이 엮어 만든 붉은 바다는 구름처럼 부풀어 올랐고, 우리는 그 파도 위를 조용히 미끄러졌다.
층층이 쌓인 색의 밀도는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했고, 간간이 보이는 푸른 소나무는 이 뜨거운 잔치 속에서 고독한 푸른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내려다본 세상은 오색찬란한 융단이었으며, 케이블카는 그 웅장한 가을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도록 돕는 느린 명상의 배였다.
내장산 벽련암도 청명한 가을하늘과 더불어 고요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천년의 고요, 단풍에 기대어 쉬다
공중의 황홀경에서 내려와 고즈넉한 산책로를 따라 걷자,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듯한 사찰의 정경이 나타났다. 벽련암. 고풍스러운 절간은 붉은 단풍의 파도 속에서 고요한 닻을 내리고 있었다.
기와지붕의 검은 선과 돌담의 거친 질감은 격정적인 단풍 색과 만나 비로소 평온을 찾았다. 특히 사찰 앞의 연못은 세상의 모든 소란을 빨아들인 듯 잔잔했으며, 붉게 물든 산과 청명한 하늘, 그리고 오래된 건물의 그림자를 품어 두 번째 세상을 창조했다.
물속의 반영은 현실보다 더 깊고 투명하여, 마치 영혼의 거울처럼 고요한 아름다움을 반추하게 했다. 사찰의 뜰에 흩어진 붉은 잎들은, 천년의 역사가 잠시 멈춘 이 공간에 떨어진 붉은 눈물 같았다.
우화정은 연못에 비치어 완벽한 대칭을 이뤘다.
우화정(羽化亭), 물 위에 피어난 꿈
내장산의 백미, 우화정(羽化亭) 앞에서는 모두가 숨을 멈췄다.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오르는 정자'라는 이름처럼, 우화정은 연못 위에서 신비로운 비상(飛上)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푸른 기와지붕이 붉은 단풍을 이고 선 채, 투명한 물에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서 있었다. 연못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거울이 되어, 위아래로 붉은 산과 푸른 정자를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냈다.
붉은 단풍잎이 수면에 키스하듯 내려앉아 잔잔한 파문을 만들 때, 정자는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 신비로웠다.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가을이 지상에 남긴 가장 완벽한 시(詩) 한 구절이었다.
내장산의 노을은 주홍색과 깊은 붉은색이 뒤섞인 장엄한 묵화(墨畫)였다.
노을, 하늘이 쓰는 붉은 묵화
내장산의 하루는 서쪽 하늘에 붓을 대면서 드라마틱하게 막을 내렸다. 해 질 녘이 되자, 하늘은 주홍색과 깊은 붉은색이 뒤섞인 장엄한 묵화(墨畫)처럼 번져나갔다.
산등성이는 짙은 먹빛의 실루엣으로 변해, 이 거대한 하늘의 불꽃놀이를 침묵 속에서 지켜보는 관객이 되었다. 쏟아져 내리는 노을빛은 지상의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였으며, 들판 위 비닐하우스마저도 잠시 예술적인 조명 아래 놓인 오브제로 변모시켰다.
이 순간, 단풍이 산에서 마지막 붉음을 터뜨리는 영혼의 절규였다면, 노을은 그 절규를 감싸 안는 하늘의 따스한 포옹이었다.
모든 감각이 정화되는 듯한 이 장엄한 광경은, 11월의 내장산이 우리에게 선사한 잊을 수 없는 가을의 대단원이었다.
내장산 단풍은 마지막 붉음을 터뜨리는 영혼의 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