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건축 혁신과 공동주택 대전환전략'심포지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건축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자재를 생산하고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내재탄소'가 그것이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만들고 운반하고 시공하는 모든 단계에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건축 분야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 17일 개최한 '목조건축 혁신과 공동주택 대전환 전략' 심포지엄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자리였다. 국토교통부, 산림청,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 건설·설계 기업과 연구기관 등 산·학·연·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목조건축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 행사는 단순한 학술 토론을 넘어, 공동주택 시장에서 목조건축이 실질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나무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태안 동문리 근대 한옥. 국가유산청 제공

과거 우리 선조들은 모든 집을 나무로 지었다. 한옥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철근 콘크리트가 건축의 주재료로 자리 잡았고, 목조 건축은 층수가 낮고 규모가 작은 건물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목재가 다시 건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왜일까?

첫째, 환경적 가치다. 나무는 성장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한다. 목재를 건축 자재로 사용하면 이 탄소가 건물 안에 고정되어 대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사례를 보면, 130가구 중 단 18가구만 목재로 건설해도 5년생 소나무 15만 그루를 심는 것과 맞먹는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목조건축이 탄소중립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인 수단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내화 성능 강화된 국내산 공학목재, 목조 아파트에도 적용 가능하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둘째, 순환경제의 가능성이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재건축 시 대부분 폐기물로 처리된다. 반면 목재는 해체 후에도 다른 목조 건물의 자재로 재활용되거나 가구 제작 등에 활용될 수 있다. 건축 자재가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의 이상에 부합한다.

셋째, 기능적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목재는 자연적으로 습도를 조절하는 특성이 있어 여름 장마철에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OSC(탈현장공법)를 활용하면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목재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심미적으로도 목재 특유의 따뜻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디자인이 거주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목조 고층건물 붐

목재바닥 이용 건축물 아센트 타워. Thornton Tomasetti 설계사무소 제공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매스팀버(Mass Timber)를 활용한 공동주택 프로젝트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매스팀버는 여러 장의 목재를 접착제로 압착해 만든 공학 목재로,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 고층 건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영국 런던의 슈타트하우스(Stadthaus)와 댈스톤 웍스(Dalston Works) 같은 사례는 목재로도 충분히 안전하고 기능적인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한국의 건축 관계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의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도 해외 목조 공동주택 사례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스팀버를 알게 됐고, 이를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건설을 계획했지만, 공사 품질 향상과 안전 확보를 위해 OSC 공법을 검토하다가 목재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국내 첫 목조아파트, 그 도전의 의미

종암동 개운산마을 조감도.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 제공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여러 면에서 한국 건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2021년 4월 조합을 설립하고, 2022년 7월 건축심의를 완료했으며, 2023년 10월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다. 2024년 4월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보증 심사를 통과해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했고, 2025년 9월 착공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지하 3층에서 지상 20층 규모로 총 130세대를 건설하는데, 그중 18세대를 중목구조로 짓는다. 건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도시형 목조아파트를 건설하는 첫 선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설계사로 간삼건축, 시공사로 보미건설, 건설사업관리사로 한미글로벌이 참여하며, 국립산림과학원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과의 협력도 진행 중이다.

목조건축의 바닥충격음 차단성능 실험장면.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이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만은 아니다. 기술·제도·안전의 실증 무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목조 구조의 안전성, 내화·내진 성능 검증, 시공 프로세스 경험 축적, 유지관리 기준 등을 실제 현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국형 목조아파트 표준모델'의 시범지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대단지 아파트에 적용하기 전에 필요한 '리스크 관리형 실증사업'으로서, 정책·기술 측면에서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입증할 수 있다. 더구나 공공기관 주도가 아닌 '도시의 작은 커뮤니티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녹색건축 모델'이라는 점에서 선도적 가치가 있다.

우려를 넘어서는 기술적 검증

구조용 집성재와 집성판은 불나도 안타는 공학목재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목조 건축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화재에 취약하지 않을까, 지진이 발생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우려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매스팀버는 일정 두께 이상으로 제작하면 표면이 탄화되면서 내부를 보호하는 특성이 있어 내화 성능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지진에 대해서도 목재는 가볍고 유연해서 오히려 철근 콘크리트보다 강한 면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심포지엄은 이러한 기술적 검증과 연구 개발 동향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목조건축 기술 연구 및 추진 전략, 목조건축의 탄소중립 기여 방안, 목조 공동주택 녹색건축화 전략 등 3개 세션으로 진행되며,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목조건축의 역할, 공동주택 수직증축을 포함한 목조화 사업 전략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정비사업의 새로운 방향성

개운산마을의 목조아파트 설계 조감도.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 제공

개운산마을 사례는 전통적으로 콘크리트 위주였던 가로주택정비사업에서 주민들이 직접 선택한 저탄소·친환경 정비사업 모델의 최초 실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향후 도시재생·정비사업의 대안 모델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특히 이 조합은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조합원과 분양계약자들이 개운산마을협동조합을 구성해 향후 단지의 관리와 경영을 함께 해나갈 예정이다. 옆집 할머니가 이웃집 아이를 돌봐주는 등 단지 내 순환과 소통이 가능한 공동체 주거 모델을 지향한다. 협동조합 형태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원형 조합장은 "목조아파트는 탄소저감 효과가 큰 친환경 주거 대안으로, 정비사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며 "심포지엄 참여를 통해 개운산마을 사업의 기술적·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산·학·연·관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녹색건축 전환의 시작점

'목조건축 혁신과 공동주택 대전환전략'심포지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국립산림과학원 김건호 연구사는 "이번 심포지엄은 목조건축을 녹색건축 전환과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 전략으로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라며 "정책, 기술, 산업이 연계된 기반을 통해 공동주택 목조화가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연구와 지원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목조주택에 대한 연구가 늘고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건축 분야가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개운산마을의 시도는 작은 출발점일 수 있지만, 이것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대규모 목조건축 허용 정책과 기준의 참고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 나무로 짓는 집이 다시 우리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시대, 그 변화의 서막이 지금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