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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대국민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국내 폐플라스틱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30% 이상 감축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공식화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플라스틱 사용 구조 자체를 바꾸는 ‘원천 감량’과 재활용 확대를 양대 축으로 한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을 제시하며, 일회용품 규제 강화와 폐기물 부담금 인상을 핵심 수단으로 내세웠다.
기후부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대국민 토론회’에서 정부안을 공개하고, 국민 생활 전반과 산업 구조를 아우르는 단계적 전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폭증하는 폐플라스틱, 구조적 대응 불가피
플라스틱은 가볍고 가공성이 뛰어나 산업과 일상 곳곳에서 활용되지만, 사용 기간이 짧고 폐기 이후 환경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전 세계 폐플라스틱 배출량은 2019년 약 3억5천만 톤에서 2060년에는 10억 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역시 2023년 기준 생활·사업장 폐플라스틱 배출량이 약 770만 톤에 달했으며,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에는 1천만 톤을 웃돌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는 이러한 증가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는 원천 감량 약 100만 톤 ▲재생원료 활용 확대 약 200만 톤을 통해 2030년 폐플라스틱 발생량을 약 700만 톤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지난 18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판매되는 커피
‘컵 따로 계산제’ 도입… 소비 인식 변화 노린다
종합대책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정책은 이른바 ‘컵 따로 계산제’다. 음료를 구매할 때 영수증에 일회용컵 가격을 별도로 표기해, 소비자가 플라스틱 사용 비용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현재 일회용컵 가격은 음료 가격에 포함돼 있으나 소비자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기후부는 가격을 명시하면 다회용컵이나 텀블러 사용을 선택할 유인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가 음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모든 빨대는 원칙적으로 사용을 제한하고, 소비자 요청 시에만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장례식장·배달·택배까지… 생활 전반 규제 확대
정부는 일회용품 사용량이 많은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다회용기 전환을 촉진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는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배달 용기는 두께와 재질을 표준화해 경량화를 유도하고, 택배 포장은 공간 비율과 포장 횟수를 제한해 과대포장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페트병 재생원료 사용 의무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2030년까지 최대 30%까지 끌어올린다.
폐기물 부담금 인상… “시장에 가격 신호 보내겠다”
정부는 플라스틱 일반용 폐기물 부담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침도 밝혔다. 폐기물 부담금은 제품 제조·수입 단계에서 장래 발생할 폐기물 처리 비용을 미리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부담금은 1킬로그램당 150원으로 2012년 이후 동결돼 있다. 기후부는 실제 처리 비용과 산업 규모를 반영해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럽연합의 경우 해당 부담금은 국내의 네 배 수준이다.
재생원료를 사용하는 제품에는 부담금을 감면하거나 면제하고, 환경 부담이 큰 일회용품에는 더 높은 요율을 적용하는 차등 제도도 검토 대상이다.
23일 열린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대국민 토론회
환경단체 “포장재 감축 빠졌다… 더 강한 규제 필요”
환경단체는 정부 대책이 전반적으로 진일보했지만, 핵심인 포장재 감축 전략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일회용품 규제는 매장 내 사용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장례식장, 놀이공원, 대형 사업장 등으로 확대돼야 한다”며 “사용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감축 목표 달성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는 특히 선택적 규제가 아닌 전면 금지와 구조적 감축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계 “과도한 규제… 영세사업자 부담 우려”
반면 산업계는 정책 속도와 강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재형 한국플라스틱포장용기협회 부회장은 “일회용컵과 배달 용기 폐기물은 전체의 3%도 안 된다”며 “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환경 프레임은 피해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계 역시 행정 부담을 문제로 지적한다.
박호진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컵 따로 계산제를 시행하려면 할인 체계, 세척 인프라, 전산 시스템까지 바뀌어야 한다”며 “영세 사업장에겐 사실상 실행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속도 조절된 구조 전환’
전문가들은 탈플라스틱 정책이 성공하려면 일괄 규제와 시장 유도 정책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환경 부담이 큰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규제하되, 산업계가 전환할 수 있는 시간과 인센티브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포장재 감축 목표의 명확화 ▲재사용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공공 투자 ▲영세사업자 지원책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정책 수용성은 떨어질 수 있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수렴한 의견을 토대로 내년 초 최종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을 확정할 계획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국민과 함께 만든 정책으로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한 순환형 사회로 전환시키겠다”고 밝혔다.
탈플라스틱 정책은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소비문화, 산업 구조, 생활 방식을 바꾸는 사회적 실험이다. 그 성패는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전환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