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9일, 조경협회 기술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제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지난 8월 29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한국조경협회(회장 남은희) '2025 조경기술세미나'는 그야말로 입체공원을 둘러싼 뜨거운 토론의 장이었다.
'입체공원, 어디로 가고 있나: 공원의 입체적 결정과 복합화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에는 학계, 실무진, 정책 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인 입체공원의 방향성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서울시가 녹지 부족 해결과 개발사업 활성화를 위해 적극 추진하는 입체공원 정책과, 기존 법체계와의 정합성을 우려하는 국토교통부의 신중한 접근 사이에서 전문가들은 어떤 해법을 제시했을까.
윤은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이 '입체공원 관련 쟁점과 해외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발제 1 | "일본 사례로 본 입체공원의 명암"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윤은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입체 도시공원 제도를 통해 우리나라 입체공원 논의의 쟁점을 짚어냈다.
"입체화는 민간 시설과 공공시설이 결합하는 경우를 말합니다"라며 개념부터 명확히 한 윤 연구위원은 일본 사례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들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공익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설치하고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입체공원이 필요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분명히 구분된다"며 전국 단위 법 개정에 대한 신중론을 제기했다.
윤은주 연구위원은 일본의 제도를 소개하며 국내 입체공원 제도의 보완을 강조했다.
향후 과제로는 ▲도시공원위원회 권한 확대 ▲공공성 및 질적 수준 강화 방안 ▲도시공원법 개정 검토 ▲지역별 차별화 적용 등을 제시했다.
홍석기 앤더스엔지니어링 상무가 '서울시 입체공원 가이드라인'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발제 2 |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찾은 서울시 가이드라인"
홍석기 앤더스엔지니어링 상무의 발제는 솔직한 심정의 토로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서울시 입체공원 제도 도입을 반대했습니다." 법적 근거 없이 서울시 단독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상무는 "주택공급이 절실한 서울시 현실에서 공원녹지 의무로 인한 사업성 저하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방안이 필요했다"며 정책적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28일 마련된 서울시 입체공원 기준에 대해 "공원 기능과 공공성, 식생 생육을 동등하게 고려해 전문가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연결 단절 지역 연결 ▲단차 활용 필요 지역 ▲자연지반 확보 곤란 지역 등을 입체공원 적용 기준으로 제시한 그는 향후 ▲법제화 ▲도시공간 활용 논의 확대 ▲기존 공원 입체화 허용 여부 결정 등이 과제라고 밝혔다.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은 '입체공원 제도 적용 사례와 설계 과제'를 발제하고 있다.
발제 3 | "설계자가 본 입체공원의 진짜 의미"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은 설계 실무자 관점에서 입체공원의 본질을 짚었다. "왜 필요한가, 어디에 필요한가, 어떻게 필요한가가 핵심 질문"이라며 "결국 도시계획적으로 어떻게 연결하고 접속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강 르네상스 계획의 반포 1·2·4지구 재개발 사례를 들며, "한강로를 따라 전체적으로 공공공간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설명한 조 소장은 "도시의 장벽을 해결하는 지점에서 입체공원을 논의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고 제안했다.
용산 도시개발 사례도 언급하며 "단순히 시설을 위한 공원이 아니라, 시설 위에 공공이 모일 수 있는 공원 개념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왼쪽 네번째)가 좌장을 맡은 토론회
토론 세션 | "현실과 이상, 그 접점을 찾아서"
발제에 이어 진행된 토론은 서영애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세 명의 발제자와 함께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이예림 서울시 도시공간본부 시설계획과장, 이해인 HLD 대표가 참여해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펼쳐졌다.
김영민 교수는 현실적인 상황판단부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입체 공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라면서 "기부체납, 사용권, 운영관리,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잘 검토해야한다"고 제도 도입의 핵심 쟁점을 짚었다.
입체공원 토론에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펼쳐졌다.
서울시 이예림 과장은 입체공원 제도 도입의 배경과 운영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개발 사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재건축으로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주민 생활에 필요한 도서관이나 생활 SOC를 함께 담을 방법은 없을지 고민했다”며 “공원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시설을 함께 제공할 수 있다면 아파트 단지 주민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해 입체공원 제도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제도가 적용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히 규정했다”며 “배포된 가이드라인에도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명확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접근성과 개방성 같은 최소한의 장치 마련, 부작용을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에서는 또 세 가지 핵심 쟁점이 집중 논의됐다.
먼저 공원의 가치와 미래 방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공원이 단순히 녹지 면적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도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공공재임을 재확인하며, 입체공원 역시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도입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둘째, 입체공원의 개념 정립과 제도적 기반 마련의 시급성이 강조됐다. 서울시의 선제적 도입과 국토부의 신중한 접근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제시됐으며, 특히 민간 부지 활용에 따른 소유권과 운영권 문제 해결이 핵심 과제로 부각됐다.
셋째, 운영관리와 법적 제도 개선 방안이 심도 있게 다뤄졌다. 특히 공공과 민간의 공원 관리 영역을 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성, 공원녹지 도시계획시설로서의 역할 재정립, 완화 규정 마련 등 서울시와 국토부의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있는 현실적 대안들이 논의됐다.
토론 말미에 참석자들이 도달한 공통된 결론은 신중한 낙관론이었다.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관리 주체, 법적 장치, 시민 이용권 보장 등 해법을 마련해야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번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도달한 공통된 결론은 '신중하되 적극적인 접근'이었다. 입체공원이 도시 공간 활용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졸속 추진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