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기 광주임우회장(왼쪽)과 공직의 표본으로 삼았던 '노각나무'
“노각나무는 제가 좋아하는 나무인데 꽃말이 ‘견고’와 ‘정의’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이 그 나무 같았습니다.”
광주임우회 노원기 회장은 공직생활 40년을 한결같이 '성실과 원칙'으로 지켜온 인물이다.
1977년 농업직 공무원으로 출발해 2017년 정년퇴직까지, 그는 도시의 숲을 가꾸며 광주의 녹색정책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이름은 광주 공원녹지 행정의 변천사 속에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임업분야에서 광주의 숲을 다듬다
1986년,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되던 해에 노 회장은 시청 공원녹지과로 발령받았다.
당시 광주시의 임업직은 37명에 불과했으나, 그가 퇴직할 무렵에는 100명에 가까운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는 도시 성장과 함께 녹지행정의 기반을 세운 ‘개척 1세대’였다.
“도시가 커질수록 나무의 역할도 커집니다.
녹지는 도시의 장식이 아니라 생명선이죠.
그때는 나무 한 그루 심는 일은 '녹색행정'의 미래를 심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철학은 ‘숲을 행정으로 읽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무등산 구상나무 — 믿음과 뚝심으로 가꾼 산림행정의 상징
1994년의 무등산 장불재 구상나무 식재사업은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일부 환경단체는 “고산 수종의 인위적 식재는 생태계 훼손”이라 반대했지만,
그는 학계와 협의하며 '무등산 자생수종 복원'이라는 명확한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다.
“무등산은 원래 구상나무와 주목이 함께 자생하던 산입니다.
그 사실을 근거로 사업을 밀어붙였고, 지금도 그 나무들이 건강히 자라고 있습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무등산의 구상나무는 병충해 없이 자생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결정은 현장을 믿은 행정의 정당성으로 남았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논란은 평생의 숙제처럼 느끼고 있다.
자신의 40년 공직생활을 녹지처럼 늘 푸르게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노원기 광주임우회장
청렴은 행정의 뿌리, 생활의 원칙
노 회장은 광주시 공원녹지 행정의 주요 현안을 수없이 맡았다.
운천저수지 리모델링, 시청 미관광장 조성, 푸른길 사업 등 굵직한 사업을 수행하는 동안
감사원 감사와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공직은 투명해야 합니다.
저는 청렴이 곧 생존의 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와 민원은 업무의 일부이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공정하게 녹색 행정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에는 가정의 뒷받침도 있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배우자에게 “공직자는 흔들리면 안된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같은 길을 걷는 게 필요했습니다.
공직자는 언제나 유혹과 압박 속에 놓여 있습니다.
부부가 같은 윤리 기준으로 살아야 정직함을 지킬 수 있죠.”
그의 배우자 역시 평생을 함께 공직의 길에서 버텨왔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가정이 든든해야 자신이 펼치는 공적인 업무도 흔들리지 않는다”며
‘청렴한 생활의 방식’을 늘 강조했다.
9·10대 광주광역시장을 지낸 박광태 시장 시절, 광주시 녹지 예산은 천억 원을 넘었다.
이후 예산이 줄고 조직은 축소돼 노 회장은 ‘공모방식 예산제’를 도입해 창의적 경쟁체계를 열었다.
“행정이 스스로 경쟁해야 발전합니다.
공모는 단순히 예산을 나누는 절차가 아니라, 사고의 혁신을 유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의 제안은 이후 타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되며 참여형 녹색행정 모델로 자리 잡았다.
광주광역시 도시공원 위원인 노원기 회장이 '광주의 녹색 미래'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간담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길수 호남조경유통 대표, 이형철 어반 톡 대표, 노원기 회장, 김경섭 한국정원조경연합회 상임연합회장)
공원 일몰제의 아쉬움 — ‘토지는 시민의 권리’
퇴직 후에도 그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며,
공원 일몰제 대응 과정에서 여러 논의를 함께했다.
“그때 책임자들이 채권을 발행해서라도 부지를 확보했어야 합니다.
공원은 시민의 땅입니다. 한 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행정평가가 아니라, 미래 도시정책에 대한 윤리적 선언처럼 들린다.
현재 노 회장은 광주임우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50여 명의 선후배 임업직 공무원들과 함께 지역 녹지정책 자문과 멘토링을 이어간다.
“임업직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직렬이 아닙니다.
도시의 생태문화를 설계하는 전문가입니다.
보도블록 대신 정원을, 시설 대신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녹지행정의 본질을 “사람과 자연의 접점을 디자인하는 일”로 정의한다.
최근 노 회장은 선배인 한국정원조경연합회 김길수 공동연합회장으로부터
아호 ‘곡정(谷井)’을 받았다. ‘계곡의 샘’이라는 뜻으로, 깊은 골짜기에서도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을 간직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곡정은 제 인생의 마지막 이름입니다.
청렴과 정의, 그리고 자연을 향한 마음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지요.”
노원기 회장(오른쪽)은 공직자 선배인 김길수 대표(왼쪽)와 나무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노각나무와 곡정 — 광주의 녹색정신을 잇다
40년간 수십 개의 공원사업, 수많은 감사와 논란 속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노각나무의 꽃말처럼 견고(堅固) 하고 정의(正義)로웠으며,
그의 정신은 곡정((谷井)의 샘물처럼 마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고 있다.
“공무원은 나무와 같습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여야 합니다.”
그가 심은 나무들은 지금도 광주의 공원과 도시숲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이름 ‘곡정’처럼, 광주의 녹색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적셔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