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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 후보 안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일 제시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후보안을 두고 시민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산업계 역시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며 불만을 표출하면서, 정부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사회적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시민사회 "최악과 차악만 남긴 정부"
정부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2035 NDC 공청회를 열고 두 개의 후보안을 공개했다. 첫 번째 후보는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0∼60% 감축', 두 번째 후보는 '53∼60% 감축'이다.
그러나 시민사회 토론자들은 '공동발언' 형식으로 정부 후보안을 전면 거부하는 입장을 밝혔다.
플랜1.5·빅웨이브·여성환경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토론자들은 "국가가 NDC를 달성했는지 평가는 하한선을 기준으로 이뤄질 것"이라면서 "그런데 정부가 2035 NDC 대국민 논의 과정에서 내놓은 안 중에 최악과 차악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65% 감축'은 물론,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억제할 확률이 50%라도 되려면 필요하다고 제안한 '61% 감축'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범위 설정은 착시...하한만 지키면 끝"
시민사회는 특히 단일 감축률이 아닌 '범위' 형태로 목표가 제시된 것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하한만 달성해도 NDC를 달성한 것이 되기에 목표의 구속력이 상실된다는 지적이다. 실질적으로는 최소 감축률인 50% 또는 53%가 목표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현준원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NDC를 범위로 설정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제출할 때 필요한 아이디어일 수 있으나 법적 측면에선 하한이 중요할 뿐 상한은 아무 의미가 없고 착시만 일으킨다"면서 상한을 설정할 필요가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규진 아주대 교수도 "범위로 NDC를 설정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범위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등 사회적 갈등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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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헌재 기준 위배...위헌적 목표"
시민사회는 정부안이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지난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전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기여하고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말아야 하며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현준원 연구원은 "첫 번째 후보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헌재의 요구를 충족하는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면서 "최소한 선형 감축(2018년부터 2050년까지 매년 같은 비율로 감축) 시보다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도록 감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진 교수는 "정부가 내린 결론은 '실현가능한 책임 있는 감축'인 것 같은데 탄소중립기본법에는 '실현가능한 감축', '책임 있는 감축'을 하라는 문구가 없다"면서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시하는 기본원칙은 '미래세대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계도 반발 "48% 감축도 어렵다"
산업계 역시 정부안에 불만을 표했다. 산업계는 48% 감축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주장해 왔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여러 부처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기후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기술작업반이 마련한 시나리오 중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안이 48% 감축이었다"면서 "과학적으로 오래 검토된 안이 산업계 요구안이라는 이름으로 굉장히 약한 안으로 취급받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등 8개 단체는 전날 '산업계 공동건의문'에서 "기후부가 (2035 NDC 토론회에서) 제시한 4개 안 가운데 '48% 감축' 외에는 각 부문과 업종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어떻게 감축할지 수단과 근거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면서 "부문별,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량과 수단이 명확히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 당사자 목소리 배제...공론화 실패"
시민사회는 정부가 공론화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실질적 피해를 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창민 플랜 1.5 활동가는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는 이름이 무색하게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는 "지난 6차례 토론회 때 여성 토론자 비율이 9.5%에 그치는 등 생활·돌봄·여성 등의 영역은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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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환영사
"깜깜이 논의...행정절차법 위반 의혹"
이날 공청회를 두고 행정절차법 위반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행정절차법은 공청회 14일 전 주요 내용 등을 공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정부는 2035 NDC 후보를 공청회 시작과 함께 공개했다.
기후부는 앞서 토론회 때 4가지 안(48% 감축, 53% 감축, 61% 감축, 65% 감축)을 제시했으므로 주요 내용을 사전에 공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행 계획 없는 목표...예산은?
정부가 감축률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이행 계획과 수단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날 공청회에서 NDC 이행전략이 제시되기는 했으나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을 통한 화석연료 축소',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완화', '저탄소 제품 생산 인센티브', '모빌리티 전동화 로드맵 수립',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의무화' 등 정책을 개략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NDC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예산 등은 제시되지 않았다.
기후부 출범 취지 무색...사회적 합의 실패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후보가 제시되면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출범 1개월 만에 적잖은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는 부처에 이를 이행할 수단(에너지)도 맡겨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기후부가 출범했는데, 목표 설정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2035 NDC 후보안은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수준에 못 미치면서도 산업계는 달성 불가능하다고 반발하는,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애매한' 목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