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수 재배 외길을 걸어온 이병관 지회장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함께 깊은 우려가 교차했다.
"나무를 키우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시민들에게 그늘이 되고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를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17일, 광주에서 만난 이병관 한국조경수협회 광주·전남서부지회장의 첫마디였다. 35년간 조경수 재배 외길을 걸어온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함께 깊은 우려가 교차했다. 류재선 사무국장과 함께 한 이날 인터뷰에서 이 지회장은 조경수 산업이 직면한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노령화와 인력난, 가장 큰 과제
조경수 산업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60대 중반의 이 지회장은 망설임 없이 "노령화와 인력 부족"을 꼽았다.
"얼마 전 포럼에 갔더니 제 나이 위가 60%, 아래가 40%더군요. 신규 인력이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스마트 농업이나 컨테이너 재배로 몇 명 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령화가 심각합니다."
인력난의 직접적 원인은 높은 인건비다. 전정(剪定) 기술을 가진 숙련공의 일당이 25만 원을 넘지만, 젊은이들은 이 일을 기피한다. 육체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부모들의 반대가 겹쳐 있다.
류 사무국장이 거든다. "김밥집도 시간당 11,000원을 줘도 알바를 못 구하는데, 옆 카페는 같은 돈에도 사람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힘든 일은 돈을 더 줘도 기피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 지회장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AI가 의사나 약사는 대체할 수 있어도, 나무 위에 올라가 전정하는 일은 아직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기술만 배우면 충분히 유망한 직종인데, 인식이 문제입니다."
이병관 지회장과 인터뷰를 함께한 류재선 사무국장(오른쪽)은 "조경수업계도 투기꾼들의 횡포를 피해갈 수 없다"고 말한다.
유통구조의 딜레마
조경수 유통구조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농가에서 직접 판매하려 해도 수형이 제각각이고, A급 나무를 찾다 보면 중간 상인을 거칠 수밖에 없다.
"중간 상인들이 농가에서 싸게 사서 높은 마진을 붙입니다. 심지어 자기 나무도 아닌데 계약금만 받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죠. 지금은 정보망이 발달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문제입니다."
류 사무국장은 더 직설적이다. "전국의 산림을 다 확인할 수 없으니 중개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협회 회원들만으로는 한 현장의 40-50% 정도만 수목을 공급할 수 있고, 나머지는 중개인을 통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투기화 현상이다. "몇 년에 한 번씩 큰 손들이 철쭉 같은 특정 수종을 몇십억 원어치 사들입니다. 가격이 오르면 내다 파는 거죠. 철쭉은 이미 투기화됐다고 봅니다."
이형철 어반톡 대표(왼쪽)과 대담하는 이병관 지회장.
기후변화와 스마트 농업의 도입
기후변화는 조경수 재배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예기치 않은 장마로 뿌리가 썩거나 상품 가치를 잃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재배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순천 쪽의 젊은 회원은 스마트폰으로 중국에서도 스프링클러 작동을 확인합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스마트 농업은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우스 설치에만 수억 원이 들고, 노령화된 농가에서 새로운 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류 사무국장은 "40대라면 과감히 도전할 수 있지만, 50-60대가 되면 고민이 깊어진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에메랄드그린(사진) 등 외국 수종들이 범람하고 있다.
수종 트렌드의 변화
최근 조경수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외국 수종의 범람이다. 에메랄드그린, 문글로우 등 외국 수종들이 전체 유통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서, 초기에는 비쌌던 가격이 폭락했다.
류 사무국장이 한숨을 쉰다. "이쁘긴 하지만 너무 많이 들여왔습니다. 작년 수목박람회에 갔더니 어느 업체나 품목이 비슷하더군요. 수입업자만 돈 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한 수종은 무엇일까.
이 지회장은 자생수종의 가치를 강조한다.
"산에서 자라던 고유수종을 개발해 식재하는 분들은 전국적으로 주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토종 철쭉이나 희귀종들이죠. 외국 수종이 한때 유행해도, 결국 우리 나무로 회귀할 것이라 믿습니다."
남부 수종으로는 가시나무가 유망하다. 미세먼지 차단용 상록수로 꾸준히 수요가 있고, 단풍나무도 저렴한 가격에 비해 안정적으로 나간다.
이병관 지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이다. 광주자연과학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공원부터, 해남 산이정원(사진) 등 다양한 현장을 보여준다고 했다.
후진 양성, 유일한 희망
그럼에도 이 지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다. 광주교육청과 협력해 2023년부터 광주자연과학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2회 현장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16개 지회 중 유일한 시도다.
"소공원부터 골프장, 해남 산이정원까지 다양한 현장을 보여줍니다. 완성된 정원만이 아니라 진행 중인 현장도 정기적으로 관찰하게 해서, 정원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배우게 하죠."
12월에는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가 특강을 하고, 전통정원 답사도 예정돼 있다.
"강의를 준비하며 우리도 공부하게 됩니다. 정보를 교류하고, 학생들에게는 진로를 열어주는 거죠."
류 사무국장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직업의 다양성'이라고 한단다.
"조경 관련 직업이 얼마나 다양한지, 정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달이 쉽지 않습니다. 제 아이들에게도 조경학과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고 했으니까요."
남부수종으로는 가시나무도 추천한다.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천연기념물이다.
"포기하지 말고 예쁘게 키우세요"
지회는 약 80명의 정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1992년 설립 이후 3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 지원사업이 많았지만 지자체 중심으로 바뀌면서 협회의 위상이 약해졌다. 회원들도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임업단체로 이탈하는 경향이 있다.
광주시와 함께하는 무료 묘목 나눔 행사는 20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예산은 2천만 원에서 늘지 않는다. "예전에는 대수종으로 시작했다가 중수종, 이제는 소수종으로 줄이는 형편입니다."
3년 임기를 마무리하는 이 지회장의 당부는 간절하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려운 고비를 밟고 일어서면 또 좋은 일이 생기니까, 포기하지 말고 나무를 예쁘게 키우세요. 수형이 좋으면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중앙에서는 중국, 대만과 수출입을 하고 있어요. 30cm 단풍나무 같은 대형목은 수출도 가능합니다."
류 사무국장은 초보 재배자들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묘목업자 말만 듣고 무작정 심지 마세요. 공부하고, 정보를 찾아보세요. 나무 간격도 모르고 심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 지회장이 말했다. "나무는 생물이라 어렵습니다. 태풍, 가뭄, 장마… 자연과의 교감이 필요하죠. 하지만 성취감이 있습니다. 내가 키운 나무가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시민들에게 그늘이 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저의 보람입니다."
35년 외길의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조경수 산업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묵묵히 나무를 키우는 이들이 있는 한, 우리 도시의 녹색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