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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4차 발사를 위한 기립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가 내일(27일) 새벽,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네 번째 우주 비행에 나선다.

이번 발사는 누리호 개발 이후 처음으로 민간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체계종합기업으로서 제작을 총괄했다는 점에서 '뉴스페이스' 시대를 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27일 오전 0시 55분께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4차 발사를 시도한다. 이번 임무의 핵심은 고도 600km 궤도에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12기의 큐브위성을 무사히 안착시키는 것이다.

전날 기립 완료… '비 예보' 뚫고 카운트다운 돌입

누리호는 발사 이틀 전인 25일 오전, 무인특수이동차량(트랜스포터)에 실려 조립동을 나섰다. 당초 오전 7시 40분 이송 예정이었으나 비 예보로 인해 노면 상태를 점검하느라 1시간 20분가량 지연된 9시에 출발했다.

약 1시간 42분에 걸쳐 제2발사대로 이동한 누리호는 기립 장치(이렉터)의 도움을 받아 수직으로 우뚝 섰으며, 오후 1시 36분경 고정 작업까지 마쳤다.

이후 연구진은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탯줄과 같은 엄빌리칼(Umbilical) 케이블을 연결하고 기밀 점검을 수행했다. 발사 하루 전인 26일에는 전원 및 추진제 시스템을 포함한 발사체 전반에 대한 최종 종합 점검이 진행된다.

우주항공청은 이날 오후 '누리호 발사관리위원회'를 열어 기술적 준비 상황, 기상 여건, 우주 물체 충돌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최종 발사 시각을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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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 4차 발사를 위한 이송 및 기립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왜 한밤중에 쏠까? '여명-황혼 궤도'의 비밀

이번 4차 발사가 기존과 달리 야간에 진행되는 이유는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특수 임무 때문이다.

이 위성은 태양 에너지를 항상 일정하게 받을 수 있는 '여명-황혼 궤도(Dawn-Dusk Orbit)'에 안착해야 한다.

이 궤도는 위성이 지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항상 태양 빛을 받을 수 있는 궤도다.

위성의 주 임무인 광학 관측 장비가 태양광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구의 대기 현상을 선명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태양 빛이 관측을 방해하지 않는 특정 시간대에 궤도 진입이 필수적이다. 이 조건을 맞추기 위해 누리호의 발사 시각이 27일 새벽 0시 55분경으로 설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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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4차 발사 준비 과정 그래픽

차세대중형위성 3호: 우주의 '오로라'와 '바이오' 실험실

이번 발사의 주인공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는 단순한 관측 위성을 넘어 '우주 과학 검증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위성의 핵심 임무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우주 날씨 관측 (오로라 및 대기광):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관측 카메라를 통해 우주에서 발생하는 오로라와 대기광 현상을 정밀 촬영한다. 이는 태양 활동이 지구 대기와 통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우주 기상 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둘째, 우주 플라즈마 측정: 우주 공간을 떠도는 전하를 띤 입자인 플라즈마와 자기장의 변화를 측정해 우주 환경의 비밀을 푼다.

셋째, 우주 바이오 실험 (바이오 캐비닛): 위성 내부에는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장비가 탑재되어 있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 환경에서 인공 장기 조직 등을 만드는 실험을 수행하며, 향후 우주 의학 발전을 위한 기초 데이터를 확보한다.

큐브위성 12기, '해양 쓰레기' 잡고 '우주 쓰레기' 치운다

주탑재위성과 함께 우주로 향하는 12기의 초소형 큐브위성(CubeSat)들도 각기 다른 임무를 띠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지구와 우주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위성들이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해양 쓰레기 탐지 (쿼터니언 - 'Pusat-01'): 제주도 인근 해역을 돌며 바다 위에 떠다니는 해양 쓰레기를 찾아낸다. 위성에 탑재된 특수 카메라로 플라스틱 등 부유물을 식별하여 해양 오염 실태를 파악하는 '바다 지킴이' 역할을 맡는다.

우주 쓰레기 제거 기술 검증 (우주로테크 - 'Cosmic'): 임무를 다한 위성이 우주 쓰레기로 남지 않도록 스스로 폐기하는 기술을 실증한다. 임무 종료 후 위성이 대기권으로 진입해 타버리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테스트하여 지속 가능한 우주 개발의 가능성을 연다.

이 외에도 서울대(스페이스린텍)의 위성은 우주 미세중력 환경에서 항암제 결정 성장 실험을 통해 신약 개발 가능성을 타진하며, KAIST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도 편대 비행 및 우주 통신 기술 검증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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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4차 발사를 위한 기립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발사 13분 후 위성 사출... 600km 상공 안착이 관건

누리호는 이륙 13분 27초 후, 고도 600km에 도달하면 주탑재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가장 먼저 분리한다. 이후 12기의 큐브위성들이 20초 간격으로 차례차례 우주 공간으로 튀어 나간다. 위성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정교한 시차를 두고 사출이 이뤄진다.

발사의 최종 성공 여부는 위성들이 목표 궤도(고도 600km, 오차범위 ±35km)에 정확히 진입했는지에 달려 있다. 항우연은 발사 후 약 1시간 20분이 지난 시점에 위성 궤도 안착 여부를 포함한 발사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민간 우주 시대' 개막...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첫 도전

이번 4차 발사는 대한민국 우주 산업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 기업이 체계종합을 주관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난 3차 발사까지는 항우연이 제작과 발사 운용을 전담했지만, 이번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누리호의 제작 총괄부터 발사 운용 참여까지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발사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예정된 5, 6차 발사를 거치며 발사체 설계, 제작, 발사 운용에 이르는 관련 기술을 항우연으로부터 완전히 이전받게 된다.

이는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New Space)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