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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등 기자회견. 연합뉴스

내년 6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남 창원시가 일찌감치 ‘현수막 논란’에 휩싸였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과도한 정치 현수막 게시 문제가 올해도 예외 없이 재현되자 환경단체가 “규제의 사각지대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환경단체는 11일 창원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원 시내 곳곳이 벌써 정치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며 “현수막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법·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들은 “현수막은 대부분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만들어져 자연 분해가 어려우며, 폐기 과정에서 더 큰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소각할 경우 1군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과 온실가스 배출이 뒤따르고, 한 장을 생산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약 4㎏의 탄소가 나온다”며 “선거철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현수막이 사용되는 만큼 도시 전체의 탄소 배출과 폐기물 증가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의 우려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용되는 현수막 수는 통상 260만 장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체 측은 “260만 장이란 수치는 단지 통계일 뿐이며, 선거 경쟁이 과열된 지역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현수막이 설치된다”며 “도시는 매 선거마다 마치 ‘현수막 숲’ ‘현수막 터널’이 된 듯하다”고 비판했다.

규제 비켜간 정당 현수막…“법적 특혜 구조가 난립 불러”

환경단체가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한 것은 바로 정당 현수막이 법적으로 특혜에 가까운 예외 규정을 누려 왔다는 점이다.

도시 미관과 안전을 관리하는 옥외광고물법은 일반 광고물의 설치 기간, 위치, 크기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사전 신고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이 게시하는 정치 현수막은 과거 법 개정 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규제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이 조항이 ‘구멍’이 돼 지자체는 정당 현수막을 일반 상업 광고처럼 제한할 법적 근거가 부족했고, 정당들은 도시 전역에 대량 게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창원시의 한 공무원은 “정당 현수막은 신고 없이 설치되는 경우가 많고, 현행 법상 이를 바로 철거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원이 들어와도 법적 근거가 빈약한 경우가 있어 즉시 조치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난립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여야 모두 “현수막이 많아질수록 유권자 피로감을 높인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종의 ‘노출 경쟁’으로 인해 현수막 수를 줄이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다른 당이 50장을 걸면 우리도 최소 50장은 걸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경쟁 구조 자체가 난립을 고착화한다”고 전했다.

선거철 더 심각해지는 ‘재활용 불가’ 문제…지자체도 골머리

환경단체의 지적처럼 현수막은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합성섬유 재질은 분해가 잘 되지 않고, 인쇄 과정에서 사용되는 잉크 성분 때문에 소재 분리도 어렵다.

선거 이후 한꺼번에 배출되는 방대한 양은 지자체 폐기물 처리 인력과 비용을 빠르게 소모시킨다.

창원의 한 환경미화원은 “선거가 끝나면 일주일 동안 현수막 수거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가로수, 가로등, 신호등, 교차로 철제 구조물에 묶인 현수막을 철거하는 데 많은 노동력이 든다”고 말했다.

현수막이 도로표지판을 가리는 등 교통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일부 현수막은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거나 바람에 찢겨 도로 위로 날아드는 사고 사례까지 보고된 바 있다.

도시를 어지럽히는 정당 현수막. AI 생성 이미지


국회도 뒤늦게 손질…“정당 현수막 규제 포함” 개정안 움직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최근 정당 현수막 문제를 인식하고 정당 현수막도 옥외광고물법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혐오·비방 표현이 포함된 정치 현수막은 금지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정당은 앞으로 현수막을 설치하기 위해 신고·심사 절차를 밟아야 하고, 지자체는 기초적인 환경·안전 기준을 근거로 게시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사실상 “정당 현수막의 무제한 게시 특혜를 없애는 첫 단계”로 평가된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처음부터 모든 현수막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당도 일반 시민·기업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거운동의 자유는 보장하되 환경권·안전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읍·면·동별 연 2장 제한” 요구…지자체도 공감대 형성

환경단체는 국회 개정안보다 더 구체적인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단체는 “정당 현수막을 읍·면·동별로 연 2장 이내로 제한하는 조항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역별 인구 규모와 도시 특성을 반영한 것이며, 지자체 입장에서도 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현재도 민원이 폭증해 대응에 인력이 부족하다”며 “정확히 법으로 정해지면 오히려 현장에서의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면 금지나 강력한 제한보다는 디지털 선거운동 전환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현수막 대신 디지털 게시대를 설치하거나 온라인·SNS·지역 커뮤니티 등을 활용하면 환경 부담도 줄고 유권자 접근성도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 vs 환경권…조율 필요한 사회적 합의

정치 현수막 문제는 단순한 미관 논란을 넘어, 표현의 자유와 환경권·안전권의 충돌이라는 측면을 갖는다. 전문가들은 “어느 한 쪽이 무조건 우선할 수 없는 만큼 합리적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헌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지만, 무제한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며 “도시 공간은 공공의 자산이므로 환경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수막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선거운동 방식이 이미 충분히 발달한 만큼, 현행 제도가 과도하게 현수막에 의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