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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식산봉 황근 제주에 자생하는 세미맹그로브 식물 중 하나인 황근.
기후 위기 시대의 해양 생태계 기반 탄소 흡수원, 이른바 '블루카본(Blue Carbon)'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특별자치도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자생식물을 활용한 '세미맹그로브 숲' 조성에 착수하며 블루카본 생태계의 선도적 모델을 제시했다.
제주도와 제주은행의 협력으로 추진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의 육상 산림을 넘어, 해안 습지 식물의 뛰어난 탄소 흡수 능력을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활용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 맹그로브와 블루카본
맹그로브는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의 해안가나 강 하구의 기수역에 서식하는 독특한 식생이다. 그 생태학적 가치는 탄소 흡수 능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맹그로브 숲은 같은 면적의 육상 산림에 비해 3~5배에 달하는 탄소 저장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맹그로브의 생육 환경 특성을 보면
첫째, 뿌리가 물에 잠겨 자라기 때문에 나뭇잎이나 가지가 분해되는 속도가 느려 탄소가 대기 중으로 재방출되는 것을 지연시킨다.
둘째, 조수 간만의 차가 있는 환경에서 퇴적물이 활발히 쌓이면서 토양(진흙) 깊숙이 유기 탄소를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맹그로브 숲은 기후 위기에 맞서는 '천연의 탄소 저장고'이자, 연안 침식 방지 및 생물 다양성 보전에도 기여하는 중요한 생태계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4계절을 가진 국내 기후에 맹그로브는 자랄 수 없다. 냉해를 입은 맹그로브는 생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내 맹그로브 서식 환경의 한계와 변화
맹그로브는 평균 기온 15도 이상, 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환경을 선호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기후는 맹그로브가 자연적으로 정착하고 생존하기에는 겨울철 추위가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지속된 기후 온난화 추세는 이러한 생태 지도를 바꾸고 있다.
특히 해수면 온도 상승은 맹그로브의 북방 한계선을 점진적으로 북상시키고 있다. 현재 맹그로브의 북방 한계선은 일본 규슈섬 남부까지 올라와 있으며, 이는 제주도 남해안 일대와 위도가 겹치는 수준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등 국내 연구기관들은 이미 아열대 수종인 맹그로브를 국내에 도입하고 시험적으로 심어 생존 능력과 탄소 흡수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 속도와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전문가들은 빠르면 수년 내에 제주도 등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맹그로브가 자연적으로 정착하거나 인위적인 조성을 통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제주도의 전략적 선택: 자생 '세미맹그로브' 활용
제주도는 맹그로브가 국내에 정착하기를 기다리는 대신, 이미 제주 해안에 자생하며 맹그로브와 유사한 생태적 특성을 가진 '세미맹그로브'를 활용해 선제적인 블루카본 확보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미맹그로브의 정의와 자생종
세미맹그로브는 맹그로브처럼 해안의 염분 환경에 강하거나 일부 수계 환경에 적응하여 뛰어난 탄소 흡수 능력을 보이는 식물을 통칭한다. 이들은 완전한 맹그로브 식물종은 아니지만, 기후 변화 대응 관점에서 유사한 기능과 잠재력을 제공한다.
제주도에서 세미맹그로브로 분류된 주요 자생종은 황근과 갯대추나무이다.
황근 (Hibiscus hamabo)은 무궁화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 관목으로, 염분과 강풍에 매우 강해 주로 해안가나 곶자왈 지역에서 자란다.
갯대추나무 (Ziziphus jujuba var. inermis)는 갈매나무과에 속하며, 갯벌이나 해변의 모래땅에서도 잘 자라는 내염성(耐鹽性) 수종이다.
이들 자생 세미맹그로브는 시험 연구 결과, 계절과 조건에 따라 맹그로브 식물 대비 1.2배에서 최대 2배에 달하는 높은 광합성 효율, 즉 탄소 흡수 효율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미맹그로브 숲 조성' 프로젝트 세부 내용
제주도는 제주은행과 협업해 2029년까지 5년간 총 45억 원을 투입하여 해안 지역 140ha 규모의 세미맹그로브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제주도가 숲 조성 부지 제공 및 장기적인 숲 유지·관리와 기술적 지원 담당한다.
제주은행은 숲 조성에 필요한 총 45억 원의 비용 부담하고 임직원들이 나무 심기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이는 제주 지역 내에서 기업이 참여하는 첫 번째 세미맹그로브 숲 조성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140ha 규모의 숲이 조성되면 연간 약 296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제주도의 탄소중립 실현 목표에 기여하는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될 것이다.
블루카본 생태계의 미래와 확장성
제주도의 세미맹그로브 숲 조성 사업은 국내 블루카본 생태계 구축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자생종을 활용한 탄소 흡수원 발굴의 중요성이다. 외래종인 맹그로브의 도입이 환경적 불확실성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제주 자생종인 황근과 갯대추나무를 활용하면 기후 적응력이 뛰어나고 기존 생태계와의 조화 측면에서 훨씬 안정적이다.
이는 다른 지자체에도 지역 특성에 맞는 블루카본 잠재 식물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민간 자본(기업)의 환경 프로젝트 참여 확대이다. 제주은행의 자발적인 대규모 투자 및 참여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 및 탄소 상쇄 모델을 제시한다.
제주도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해조류, 잘피, 염생식물 등 다양한 해양 생태계 전반으로 블루카본 인증 면적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탄소 흡수 능력 우수 식물 자원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기후 변화 대응의 선도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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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맹그로브 숲 조성 협력사업 협약식 [제주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