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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의 영농 폐기물 수거, 처리 시범 사업.

영농 폐기물 수거·처리원주시가 추진 중인 ‘기타 영농폐기물 무상 수거·처리 시범사업’이 농업인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차광막, 점적 호스, 부직포, 모종판, 반사필름 등 그동안 제도권 수거 체계에서 제외됐던 영농폐기물을 지자체가 직접 수거·처리하면서 농가 부담을 크게 덜었기 때문이다.

16일 원주시에 따르면 시는 현재까지 약 70톤의 기타 영농폐기물을 수거·처리했으며, 이달 말까지 30톤을 추가로 처리할 계획이다. 시는 내년부터 상·하반기 영농폐기물 집중 수거 기간에 맞춰 기타 영농폐기물도 함께 수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영농 현장에서 발생하는 폐비닐과 폐농약병 등은 마을별 공동집하장을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거·처리돼 왔다.

그러나 차광막이나 부직포, 점적 호스처럼 크기가 크거나 여러 재질이 섞인 폐기물은 수거 대상에서 제외돼 농민들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 처리 비용 부담으로 인해 무단 투기나 불법 소각이 반복되면서 농촌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차광막·부직포·점적 호스 등 ‘기타 영농폐기물’은 통계에서 누락되거나 과소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AI생성 이미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영농폐기물

정부와 공공기관은 매년 영농폐비닐과 폐농약용기의 발생량과 수거량을 조사·관리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폐비닐과 폐농약용기는 일정 수준의 수거 체계가 구축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표본조사에 기반한 추계치로, 차광막·부직포·점적 호스 등 ‘기타 영농폐기물’은 통계에서 누락되거나 과소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환경 분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표준 영농폐기물이 공식 통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품목이 다양하고 재질이 복합적이어서 관리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고, 그 결과 예산 배정과 정책 설계에서도 후순위로 밀려왔다는 것이다.

토양 속으로 스며드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는 기타 영농폐기물이 단순한 미관 훼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광막과 부직포, 멀칭비닐 등 농업용 플라스틱은 장기간 햇빛과 바람, 비에 노출되면서 잘게 부서져 미세플라스틱으로 전환된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토양 속 미세플라스틱은 지렁이와 미생물의 활동을 저해하고, 토양 구조와 물 순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부 연구에서는 토양 생물이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서 생리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도 관찰됐다. 이렇게 토양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은 빗물과 함께 하천으로 흘러들어 해양 오염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불법 소각 역시 심각한 문제다. 농촌 지역에서 영농폐기물을 태울 경우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이 배출될 수 있고, 산불 위험도 커진다. 주민 건강과 농산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수거는 표준 품목만, 비용은 농민 몫

현행 영농폐기물 수거 체계는 멀칭비닐과 하우스용 비닐, 폐농약병 등 규격화된 품목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농민이 공동집하장에 폐기물을 모으면 수거업체가 이를 회수하고, 무게나 개수에 따라 수거 보상금과 장려금이 지급된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kg당 수십 원에서 100원 이상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차광막이나 점적 호스처럼 대형·혼합재질 폐기물은 세척과 선별, 재활용이 까다로워 기존 시스템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이 경우 농민은 민간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거나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처리 비용이 수십만 원에 이르는 사례도 있어, 불법 투기나 소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원주시의 시범 사업은 지자체가 영농폐기물 수거, 처리에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원주 시범사업의 의미

원주시의 이번 시범사업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지자체가 직접 해결에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가 수거와 처리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농민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불법 처리 가능성도 낮췄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예산 부담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토양·수질 오염과 복구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기타 영농폐기물을 제도권 수거 체계로 편입시켰다는 점에서 정책적 실험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과제는 ‘전국 확산’과 ‘구조 개선’

전문가들은 원주 사례를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기타 영농폐기물의 발생량과 처리 비용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통계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차광막과 부직포 등 농자재 제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쉬운 구조로 설계하거나, 생산자 책임 재활용(EPR) 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분해성 농자재 도입을 위한 보조금과 시범사업 역시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 환경 전문가는 “영농폐기물 문제는 농촌의 생활 쓰레기가 아니라 토양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 문제”라며 “원주 사례처럼 공공이 책임지는 수거 체계를 확대하지 않으면 미세플라스틱 오염은 계속 누적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시의 시범사업은 농촌 곳곳에 쌓여온 ‘보이지 않는 쓰레기’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실험이 일회성에 그칠지, 전국적인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될지는 앞으로의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