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부터 매년 500곳 이상의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AI생성 이미지

마을 창고 지붕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주민들의 점심이 되고, 노인의 이동권을 책임지는 마을버스로 되돌아온다. 태양광 발전 수익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햇빛소득마을’이 정부의 핵심 지역재생 정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16일 내년부터 매년 500곳 이상의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더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며 확대를 주문했다. 과연 햇빛소득마을은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과 어촌에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에너지 자립을 넘어 ‘공동체 소득’으로

햇빛소득마을은 단순한 태양광 보급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마을 공동체가 주도해 농지, 저수지, 유휴부지, 마을 공공시설 등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그 수익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구조다.

에너지 자립, 주민 소득, 지역 복지를 동시에 꾀하는 모델로, 사회적 경제와 재생에너지 정책의 접점에 있다.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주민들이 출자해 설립한 ‘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은 마을 창고와 주차장 위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발생한 수익으로 마을회관 무료 점심, 무료 마을버스, 공동체 활동비를 충당하고 있다.

발전 수익이 특정 개인의 이익으로 귀속되지 않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쓰이면서 주민 참여와 신뢰도도 높아졌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0일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마을 태양광 발전소'를 방문, 발전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남 신안을 햇빛소득마을의 모범 사례로 직접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안은 섬 지역이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주민 협동조합 중심의 태양광·풍력 사업을 통해 ‘에너지 주민주권’ 모델을 만들어왔다.

인구소멸 지역에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정부가 햇빛소득마을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소멸 지역에 드문 ‘지속적 수입원’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소멸 대응 정책의 상당수는 주거·문화·정주 여건 개선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작 지역에 남아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은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태양광 발전은 초기 설치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특히 저수지 수상태양광이나 농지 상부형 태양광(영농형 태양광)은 토지 추가 훼손 없이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촌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을 단위로 운영할 경우, 개인 농가의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일정한 공동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햇빛소득마을은 일회성 보조금이 아니라 마을에 장기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정부는 전국 3만8천여 개 마을을 대상으로 단계적 확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햇빛소득마을 사업은 마을 내부 갈등, 환경훼손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AI 생성 이미지


마을은 어떻게 사업비를 마련하나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질문은 ‘초기 사업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태양광 설비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초기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2026년 기준 약 4천500억 원 규모의 재생에너지 금융 지원을 통해 태양광 설비 투자비의 최대 85%까지 장기·저리 융자를 제공한다. 지역농협, 신협 등 지역 금융기관도 정책자금 취급기관으로 참여해 마을공동체의 금융 접근성을 높인다.

특히 인구감소지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주민 자부담분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창업 및 사업장 신설 시 취득세 면제, 재산세 감면 등 세제 혜택도 뒤따른다. 마을은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법인을 구성해 사업 주체가 될 수 있다.

국산 기자재 사용, 산업정책과의 결합

정부는 햇빛소득마을에 설치되는 태양광 모듈과 인버터를 국산 제품으로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산을 국내 산업 육성과 연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산 기자재 사용 의무화가 사업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대만큼 우려도… “모든 마을이 성공하진 않는다”

햇빛소득마을을 둘러싼 비판적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태양광 발전 수익은 입지, 일사량, 계통 연계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전력 계통이 포화된 지역에서는 발전소를 설치해도 출력 제한으로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또 마을 내부 갈등 가능성도 변수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토지 제공자와 비제공자 간의 갈등, 수익 배분을 둘러싼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광 사업이 공동체 분열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환경 훼손 논란 역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농지 태양광이 영농을 위축시키거나, 저수지 수상태양광이 수질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환경단체들은 “햇빛소득마을이 또 다른 난개발형 태양광으로 흐르지 않도록 엄격한 환경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주 구양리 '마을 태양광 발전소' 찾은 김민석 총리.


‘숫자 확대’보다 중요한 것은 ‘질’

대통령이 500개소보다 더 늘리라고 지시한 배경에는 속도감 있는 확산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양적 확대보다 질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설치 숫자를 늘리는 데 급급할 경우, 수익성이 낮은 사업이 양산되거나 주민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재생에너지 전문가는 “햇빛소득마을의 핵심은 태양광이 아니라 ‘마을 민주주의’”라며 “주민 참여, 투명한 수익 구조, 장기 운영 역량이 갖춰지지 않으면 실패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햇빛은 공공재가 될 수 있을까

햇빛소득마을은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에너지는 시장의 상품인가, 아니면 공동체가 함께 누려야 할 공공재인가.

햇빛을 소득으로 전환하되, 그 소득을 다시 공동체로 환원하는 이 실험은 인구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 앞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햇빛이 진정한 ‘단비’가 되기 위해서는 숫자보다 사람, 설비보다 공동체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햇빛소득마을이 지방의 미래를 밝히는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