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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속초시 영랑호에 설치된 부교 철거를 둘러싸고 속초시·시의회와 지역 환경단체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시의회가 부교 철거 예산 전액을 삭감하면서 법원 판결 이행 여부와 시민 안전, 지역 경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시의회 “충분한 논의·시민 의견 수렴 없었다”
속초시의회는 19일 내년도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영랑호 부교 철거 예산 7억원 전액을 삭감했다. 철거 공사비 6억6천만원과 실시설계 용역비 4천만원이 포함된 예산이다.
정인교 시의원은 삭감 이유로 “집행부가 의회와의 사전 협의 없이 예산을 편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지난 4년간 부교 설치에 따른 실질적인 환경 영향 평가가 없었고, 시민 의견 수렴 절차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만으로는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설득하기 어렵고, 부교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철거 여부를 서두르기보다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속초시 “법원 판단 따라 철거 추진 불가피”
속초시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부교 철거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랑호 부교는 2021년 11월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길이 400m 규모로 설치됐으나, 이후 시민·환경단체가 생태계 훼손과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주민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7월 부교 철거를 명했으며, 비록 철거 기한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행정적으로 이를 이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시의 판단이다. 이에 시는 내년도 본예산에 철거 비용을 반영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예산이 삭감되면서 철거 절차는 다시 중단됐다.
환경단체 “법원 판결 무시…시민 안전 외면”
지역 환경단체는 시의회의 예산 삭감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번 결정은 시민의 안전과 법원의 판단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체 측은 “지방의회가 사법부의 판단을 외면한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며 “부교는 생태계 훼손뿐 아니라 구조적 안전 문제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회원들은 예산 통과를 촉구하며 본회의 도중 장내에 들어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시민 안전 확보 의무를 방기한 결정”이라며 “속초시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 온 시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며 법원 판단 이행을 끝까지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합의 없는 평행선…부교 철거 ‘장기 표류’ 우려
현재 영랑호 부교 철거 문제는 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는 환경단체와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는 시의회, 그리고 행정적 부담을 안은 속초시 사이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철거는 당분간 어려워졌고,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의 판단을 어떻게 이행할지, 시민 안전과 환경 보호, 지역 경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속초시에 남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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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영랑호 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