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로봇에 섬유 옷감을 입히는 모습. AI 생성이미지

"로봇도 옷을 입는다고?"

우리가 흔히 아는 섬유, 즉 옷감과 첨단 로봇이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지난 18일 손을 잡으며 이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로봇 하면 딱딱한 철과 플라스틱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람이 옷을 입는 이유는 무엇인가?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외부 충격을 막고, 때로는 멋을 내기 위해서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불타는 건물에 들어가는 소방 로봇은 고열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사람을 돕는 간호 로봇은 부드러운 촉감이 필요하다. 노인을 부축하는 로봇이 차가운 쇠로 되어 있다면? 아마 정이 안가고 불편할 것이다. 여기에 섬유 기술이 답을 줄 수 있다.

로봇·섬유 융합 산업 발전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담당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제공

섬유가 로봇을 어떻게 바꿀까?

1. 위험한 곳으로 가는 로봇의 '방호복'

화재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에는 1,000도가 넘는 열을 견디는 특수 섬유를 입힐 수 있다. 마치 소방관이 방화복을 입듯이 말이다. 원자력발전소나 화학공장처럼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 일하는 로봇도 특수 섬유로 보호받을 수 있다.

바다 깊은 곳을 탐사하는 로봇은 어떨까? 엄청난 수압을 견디면서도 물을 완전히 차단하는 섬유 소재가 로봇을 감싸준다면, 더 깊고 오래 탐사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람처럼 부드러운 로봇

최근 주목받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떠올려보자. 사람 모습을 한 로봇이 호텔에서 안내를 하거나 병원에서 환자를 돌본다면, 딱딱한 금속 표면보다는 사람 피부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훨씬 좋지 않을까?

섬유 기술로 만든 '로봇 피부'는 단순히 부드럽기만 한 게 아니다.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를 섬유 안에 넣으면, 로봇이 악수할 때 얼마나 힘을 주어야 할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할머니 손을 잡을 때와 무거운 짐을 들 때를 구분하는 것이다.

재난상황 로봇 운용 시스템 기술.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제공

3. 힘을 실어주는 '입는 로봇'

공장이나 물류창고에서 무거운 물건을 드는 노동자들이 입는 '웨어러블 로봇(착용형 로봇)'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로봇은 몸에 딱 붙어야 효과가 있는데, 무겁고 뻣뻣하면 오히려 불편하다.

여기에 가볍고 질긴 탄소섬유나 신축성 있는 스마트 섬유를 적용하면? 마치 운동복처럼 편하게 입으면서도 힘은 몇 배로 강해지는 로봇 슈트가 가능해진다. 할아버지도 20kg 쌀포대를 가볍게 들 수 있는 것이다.

4. 스스로 상태를 알려주는 '똑똑한 옷감'

최신 섬유 기술 중에는 '스마트 섬유'라는 것이 있다. 온도, 습도,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가 실처럼 섬유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섬유로 로봇을 감싸면 어떻게 될까? 로봇 관절이 닳아서 교체 시기가 되면 스스로 알려주고, 과열되면 경고 신호를 보낸다. 마치 사람이 "아야, 다리가 아파"라고 말하는 것처럼 로봇이 자기 상태를 전달하는 것이다.

두 연구원은 왜 손을 잡았나?

협약을 체결한 강기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장(왼쪽)과 김성만 한국섬유개발연구원장(오른쪽). 한국섬유개발원 제공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섬유 소재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다. 불에 타지 않는 섬유, 칼로도 찢어지지 않는 섬유, 신축성이 뛰어난 섬유 등 특수한 옷감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은 각종 로봇을 만들고 시험하는 전문 기관이다. 산업용 로봇부터 재난 구조 로봇, 의료 로봇까지 다양한 로봇 기술을 연구한다.

각자 따로 연구하면 '한쪽만' 완성된 기술만이 존재한다. 섬유 연구원이 아무리 좋은 소재를 만들어도 로봇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고, 로봇 연구원은 로봇을 만들었지만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번 협약으로 두 기관은 처음부터 함께 연구해 한 분야에만 집중된 기술을 보완한다. "이런 로봇에는 이런 섬유가 필요해"라고 로봇 전문가가 요구하면, 섬유 전문가가 맞춤형으로 소재를 개발하는 식이다. 반대로 "이런 신소재가 나왔는데 로봇에 써볼까?"라며 섬유 전문가가 제안하면, 로봇 전문가가 실제로 적용해보고 성능을 테스트한다.

섬유를 재활용하는 친환경 섬유 연구.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제공

생활에 어떤 변화가 올까?

강기원 로봇융합연구원 원장은 "로봇을 가볍고 부드럽게 만들려면 섬유 기술이 꼭 필요하다"며 "두 기관의 기술과 시설을 함께 활용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성만 섬유개발연구원 원장은 "섬유 산업이 단순히 옷만 만드는 게 아니라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을 빠르게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두 기관은 앞으로 공동 연구과제를 발굴하고, 기술 세미나를 함께 열고, 서로의 연구 장비와 인력을 공유할 계획이다. 특히 극한 환경에서 일하는 로봇과 사람이 입는 로봇을 우선 개발하고, 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것까지 함께 추진한다.

머지않아 우리는 부드러운 '옷'을 입은 로봇과 악수하고, 가벼운 로봇 슈트를 입고 일하며, 특수 섬유로 보호받는 로봇이 위험한 일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섬유와 로봇의 만남, 그 시작이 바로 지금이다.

지난 5월 개최한 '휴머노이드로봇 기술세미나'.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