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인근 숲길에서 혼자 걷거나 뛰고,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산림 활동을 즐기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숲이 국민의 일상이 되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일상적으로 숲을 향유하고, 그곳에서 건강과 치유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산림청이 3일 발표한 '2024년 산림 휴양·복지활동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산림이 갖는 위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5천 가구(1만 명 이상)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산림 휴양·복지활동 경험률은 무려 87.9%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80.7%) 대비 7.2%포인트나 급증한 수치다.
국민 10명 중 9명 가까이 자연휴양림, 숲길, 치유의 숲을 찾았다는 이 결과는 이제 산림 활동이 특정 동호인의 취미를 넘어 전 국민의 '라이프스타일'로 완전히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이벤트'가 아닌 '루틴'이 된 숲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숲을 찾는 '목적'의 변화다. 과거 산림 활동이 주말이나 휴가철을 이용한 '등반'이나 '극기'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는 '일상적 루틴'으로 변모했다.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이루어지는 '일상형 활동'의 목적을 묻는 항목에서 응답자의 63.2%가 '건강 증진'을 꼽았다.
이는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팬데믹 이후 높아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헬스장이나 병원 대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것이 최고의 건강 관리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하루 중 상당 시간을 할애하는 당일형 활동(61.9%)과 1박 2일 이상의 숙박형 활동(69.2%)에서는 '휴양·휴식'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산림 이용 패턴이 '일상적 건강관리(평일/근거리)'와 '재충전 및 힐링(주말/원거리)'으로 명확히 이원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꾸준히 추진해 온 숲길 조성, 자연휴양림 확충, 치유의 숲 프로그램 개발 등의 인프라 투자가 실질적인 국민 체감형 복지로 이어지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혼산족'과 '댕댕이', 숲의 풍경을 바꾸다
산림 이용의 동반자 유형 변화는 한국 사회의 가구 구조 변화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일상형 활동에서 '혼자서 활동한다'는 응답이 40.7%로 가장 높게 나타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타인과 속도를 맞추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이른바 '혼산(혼자 산행)족'이나 '혼둘(혼자 둘레길)족'이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숲이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는 '고립의 안식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트렌드는 반려동물이다. 응답자의 18.0%가 반려동물과 함께 산림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은 강아지와 함께 숲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이는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를 맞아, 산림이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산책 및 교감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향후 산림 정책이 단순한 보존이나 개방을 넘어, '반려동물 동반 가능 구역' 지정이나 '펫티켓' 문화 확산 등 새로운 관리 수요에 대응해야 함을 예고한다.
만족도 91%의 비결과 '계절의 쏠림' 과제
산림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91% 이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산림청과 지자체가 꾸준히 추진해 온 숲길 조성, 자연휴양림 확충, 치유의 숲 프로그램 개발 등의 인프라 투자가 실질적인 국민 체감형 복지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다만, 숙박형 활동의 이용 시기가 5월, 8월, 10월에 전체의 절반 이상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봄꽃, 여름 휴가, 가을 단풍 시즌에 수요가 폭발하는 전형적인 성수기 쏠림 현상은 예약 전쟁과 산림 훼손, 이용객의 피로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철 특화 프로그램 개발이나 비수기 할인 혜택 등 계절적 수요 분산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생활권 숲 복지 시대 열겠다"
이번 조사 결과는 산림 정책의 방향성이 '산'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보존' 중심에서 '이용과 복지' 중심으로 확실히 이동해야 함을 보여준다.
송준호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은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산림을 찾는 시대에 맞춰 산림복지서비스를 생활권 가까이에서 더욱 쉽게 누릴 수 있도록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의 산림 행정이 거창한 명산을 가꾸는 것을 넘어, 도심 속 자투리 숲, 아파트 단지 뒤 산책로, 무장애 나눔길 등 내 집 앞 5분 거리에서 누릴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인프라' 확충에 집중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제 숲은 멀리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서재이자, 건강을 지키는 피트니스 센터이며, 가족과 반려동물이 뛰어노는 놀이터다. 국민의 삶 깊숙이 파고든 숲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지 기대된다.
이번 조사 결과의 상세 내용은 산림청 누리집(https://forest.go.kr), 한국산림복지진흥원 누리집(https://fowi.or.kr), 국가통계포털(https://kosis.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