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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 '떼죽음' 사태를 겪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양이 11월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선정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달 멸종위기종으로 산양을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산양은 성체의 몸길이가 105∼130㎝, 몸무게가 25∼35㎏ 정도인 우제목 소과에 속하는 중형 포유류다. 산양은 암수 모두 뿔이 있는데 길이는 13∼14㎝ 정도다. 털은 대부분 회갈색이지만 끝부분이 담흑갈색이다. 산양의 겨울털은 부드럽고 빽빽한 것으로 유명하다.
산양은 세계적으로 4종이 확인되며 티베트와 히말라야, 중국 남부지방, 중국 북동과 러시아 극동의 아무르 지역 등 산악 또는 고산지대에 국한돼 서식한다. 두 개로 길게 갈라진 튼튼한 발굽으로 바위틈을 타고 빠른 '등산'이 가능해 산악에 적응해 살고 있다.
국내에서는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 고성군에서 경북 경주시까지 산지에 분포한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개체는 약 2천마리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 1964년 3월과 1965년 2월 대폭설로 강원에서만 6천마리가 포획된 기록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멸종 위기 직면
산양이 멸종위기에 이른 가장 큰 원인은 밀렵과 서식지 파괴다. 1960년대 폭설로 눈에 갇힌 산양을 사람들이 대량으로 포획했고, 이후에도 올무 등을 이용한 불법 포획이 계속됐다.
서식지 파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설악산 국립공원 등 산양의 주요 서식지는 인간 활동으로 파편화되고 있다. 탐방로가 계속 늘어나고, 서식지를 가로질러 도로가 깔리면서 산양의 활동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산지 개발을 위해 건설된 차량 도로가 산양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한다고 지적한다. 도로가 생기면서 로드킬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이 차단돼 근친교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북 울진군에서는 산양 핵심서식지인 왕피천생태경관보전지역과 울진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관통하는 36번 국도에서 산양 로드킬이 잇따라 발생했다.
◇ 떼죽음 부른 ASF 차단 울타리와 기후변화
2023년에서 2024년으로 이어진 겨울에 산양은 떼죽음을 당했다. 2023년 11월부터 2024년 3월까지 폐사 신고된 산양은 785마리에 달한다.
당시 폭설과 함께 야생 멧돼지 이동을 저지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으려고 설치한 울타리가 산양 떼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서식지 단절에 폭설 문제가 겹치면서 좁은 지역에 고립된 산양이 추위와 굶주림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산양은 겨울철 땅에 붙은 풀을 뜯어 먹고 살기에 많은 눈이 내려 쌓이면 먹이활동이 어려워진다. 또 다리가 짧아 눈이 쌓였을 경우 이동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기후부는 "최근 기후변화로 폭설이 잦아지며 산양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눈 속에 고립돼 폐사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꾸준한 보호 활동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부실한 대처를 비판한다. 이전부터 ASF 차단 울타리의 악영향이 제기됐지만 산양 보호 의무가 있는 정부가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동서녹색평화도로 설치, 오색 케이블카 사업 등 무분별한 개발이 산양 서식지를 직접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200만년 전 지구상 처음 출현했을 때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는 산양은 현재 1급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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